후성유전체편집 기반 치료기술 개발의 연구동향
김미랑 책임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1. 개요
CRISPR 기술은 특정 유전자 서열을 인식하고 DNA 이중가닥을 절단한 후 정밀하게 교정하는 기술로 유전질환의 혁신적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2023년 유전자편집치료제 ‘카스게비(Casgevy)’가 겸상적혈구증후군과 지중해성 빈혈에 대한 치료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되어,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유전자편집치료제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카스게비는 골수이식과 유사한 ex vivo 치료기술로 1회 투약 비용이 220만 달러(한화 약 29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치료기술이다. 따라서, 치료비용을 낮추고 다양한 질환에 적용하기 위해 in vivo 유전자편집 치료기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CRISPR 기술을 in vivo로 적용하기에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DNA 이중가닥을 절단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 가닥 절단만으로 정밀한 교정이 가능한 염기교정(Base editing)과 프라임교정(Prime editing) 기술이 개발되었지만, 교정 가능한 부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점이 있다.
후성유전체편집은 DNA 메틸화를 바꾸거나, DNA가 감싸고 있는 히스톤 단백질의 변형을 통해, DNA 절단 없이 유전자의 발현을 켜거나 끄는(on-off) 시스템으로, 유전자 발현을 지속적이고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로 기대되고 있다. 기존의 유전자편집은 세포의 DNA 복구 경로를 이용하여 영구적으로 DNA 염기서열을 변경하는 반면, 후성유전체편집은 후성유전조절인자를 통해 비교적 일시적이고 가역적인 변형을 일으킴으로써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줄여준다. 최근, 후성유전체편집을 적용한 다양한 질환의 치료 가능성이 논문으로 발표되고 있어서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2. 조혈줄기세포의 후성유전체 편집
Cas9 단백질의 DNA 절단 기능을 없앤 dCas9을 DNA 메틸화 효소(DNMT) 혹은 히스톤 변형 단백질과 융합하여 다양한 후성유전체편집이 가능하다(그림 1). 후성유전체편집은 특히 DNA 메틸화를 표적으로 삼아, 유전체 상의 원하는 위치에 메틸기를 도입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CRISPR/dCas9과 DNMT의 융합체를 이용하여 타겟 유전자의 프로모터 부위 CpG(Cytosine과 Guanine이 일렬로 나란히 있는 DNA 서열)를 메틸화시키면, 메틸화가 확산되고 그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억제된다. 초기 후성유전체편집 연구는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여 후성유전학적 변화와 질병 발생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연구가 활발하였다.
노화는 골수줄기세포를 포함한 다양한 세포에서 유전자 프로모터 부위 DNA 메틸화 증가와 관련이 있다. DNA 메틸화 패턴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에서 더욱 교란되지만, 이러한 후성유전학적 변화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2023년 영국 Barts Cancer Institute의 Gabriella Ficz 연구팀은 혈액세포를 만드는 조혈계(hematopoietic system)에 후성유전체편집을 적용하였다. 조혈줄기세포 및 전구세포(hematopoietic stem and progenitor cell; HSPC)에서 후성유전체편집을 이용하여 CDKN2B (p15) 유전자의 메틸화가 조혈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dCas9-3A3L (dCas9과 DNMT3A 및 DNMT3L의 융합) 시스템을 사용하여 p15 프로모터의 DNA 메틸화를 유도하고, DNA 메틸화가 gRNA 위치를 넘어 확산되는 것을 관찰하였다(그림2). 일시적인 전달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DNA 메틸화는 골수분화 과정에서 유지되었으며, p15 프로모터의 과메틸화는 p15 유전자 발현을 감소시켰다. 또한, 후성유전체편집이 적용된 인간 HSPC를 마우스의 골수에 이식하여 표적 DNA 메틸화가 장기적으로 유지됨을 관찰할 수 있었다. p15 프로모터가 과메틸화된 HSPC에서 유래된 단핵구는 염증 관련 유전자들의 발현이 증가하였으며, 이는 클론성 조혈증(Clonal hematopoiesis of indeterminate potential; CHIP) 환자의 말초혈액에서 발견되는 p15 프로모터 과메틸화가 골수의 조혈 변화에 기여할 것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노화 관련 비정상적인 DNA 메틸화가 생체 내 조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림 2. dCas9-3A3L(dCas9과 DNMT3A 및 DNMT3L의 융합) 시스템을 이용한 조혈줄기세포의 후성유전체편집(PNAS, 2023)
이렇듯, 후성유전체편집을 이용하면 DNA 메틸화 등 후성유전체 변화에 의한 유전자 발현의 교란이 암과 같은 질병의 발생 과정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3. 고지혈증 치료를 위한 in vivo 후성유전체편집
후성유전체편집은 난치질환의 새로운 치료기술로 기대되지만, 완전한 치료적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생체 내에 일시적으로 전달된 후성유전체편집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지 증명되어야 한다. 2024년 이탈리아 IRCCS San Raffaele Scientific Institute의 Angelo Lombardo 연구팀은 간세포에서 콜레스테롤 항상성에 관여하는 Pcsk9 유전자를 표적으로 후성유전체편집에 의한 유전자 침묵 유지를 마우스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PCSK9은 간세포의 세포막에 있는 저밀도 지단백질(LDL) 수용체의 분해를 촉진하여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는 단백질로 고콜레스테롤혈증의 치료를 위해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타겟이다. 연구팀은 마우스 Pcsk9의 DNA 메틸화를 유도하는 후성유전체편집 모듈을 mRNA 형태로 탑재한 지질 나노입자(mRNA-LNP)를 마우스에 1회 투여한 후, 혈중 PCSK9 단백질의 수치가 1년 동안 거의 절반 수준으로 유지됨을 관찰하였다(그림 3). 주목할 점은, 간 조직의 부분절제 후 간이 재생된 상태에서도 Pcsk9의 메틸화가 유지되었다.
여러 차례 투여해야 하는 RNAi와 비교할 때, 후성유전체편집은 일회 투여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유전자편집과 달리 타겟 유전자를 불활성화하기 위해 DNA 절단을 유도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다중 유전자를 표적으로 할 때 안전상의 이점이 있다. 높은 특이성을 특징으로 하는 후성유전체편집 기술이 기존 유전자편집 기술과 비슷한 효율성으로 마우스의 혈중 PCSK9 수치를 감소시켰지만, DNA 손상은 일으키지 않았다. 이로써 in vivo 후성유전체편집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4. 광우병 치료를 위한 in vivo 후성유전체편집
광우병을 포함하는 프리온질환(Prion disease)은 뇌의 Prion 단백질의 잘못접힘(misfolding)에 의해 독성 응집체가 형성되어 신경세포가 죽게 되는 치명적인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이 질환은 우발적으로 나타나거나, 유전되거나, 전염을 통해 생길 수 있다(예: 광우병). 아직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지만, 동물실험에서 뇌의 Prion 단백질 수치를 낮추면 최소한의 부작용으로 질병 진행이 멈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Prion 단백질은 포유류에서 필수적이지 않으므로 뇌에서 발현을 낮추는 것이 최선의 치료 전략이라 할 수 있다.
2024년 미국 MIT의 Jonathan Weissman 연구팀은 후성유전체편집을 이용하여 뇌에서 Prion 단백질 발현을 영구적으로 끄는 데 성공하였다. 특히, AAV를 통해 마우스 뇌에 전달하기 위해 소형 후성유전체편집 기술인CHARM(Coupled Histone tail for Autoinhibition Release of Methyltransferase) 기술을 개발하였다. CHARM은 타겟 DNA 메틸화을 유도하기 위해 세포에서 내재적으로 발현되는 DNMT를 끌어오는 방식을 채택했다. 히스톤 H3 꼬리와 Dnmt3l 도메인과의 융합을 통해 DNMT를 원하는 위치로 끌어와서 Prion 단백질 유전자 Prnp를 메틸화하였다(그림 4).
그림 4. CHARM 후성유전체편집. Dnmt3l 도메인(D3L)과 히스톤 H3 꼬리에 융합된 DNA 결합 도메인(DBD)으로 구성됨.
Prion 단백질 유전자 Prnp 프로모터의 DNA 메틸화를 통해 Prnp 발현을 OFF 시킴(Science, 2024)
CHARM은 CRISPR-Cas, TALE, Zinc Finger 도메인을 포함한 여러 DNA 결합 양식과 호환이 가능하다. Prion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Zinc Finger 도메인과 CHARM을 결합하여 AAV를 통해 마우스 뇌에 전달하면 Prnp 프로모터를 메틸화하고 뇌 전체에서 최대 80%까지 발현을 감소시켰다. 또한, 표적 유전자 발현을 침묵시킨 후 스스로 비활성화되는 자가 침묵 CHARM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은 분열하지 않는 신경세포에서 지속적인 발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항원성과 오프타겟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CHARM 발현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연구팀은 뇌에서 DNA를 프로그램적으로 메틸화하여 표적 유전자를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침묵시킬 수 있는 후성유전체편집기의 AAV 매개 전달을 처음으로 시연했다. CHARM은 세포가 내재적으로 발현하는 DNMT를 활용하므로 잠재적으로 세포독성이 있는 DNMT 촉매 도메인의 과발현을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5. 결론 및 시사점
후성유전체편집은 후성유전조절인자 중에 특히 DNA 메틸화를 표적으로 하여, 유전체 내 특정 위치에 메틸기를 도입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초기 연구에서는 이러한 도구를 활용해 후성유전학적 변화와 질병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인간의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응용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차례 투여해야 하는 RNAi 방식과 비교할 때, 후성유전체편집은 단 한 번의 투여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유전자편집과 달리 타겟 유전자를 불활성화하기 위해 DNA 절단을 유도할 필요가 없으며, 특히 다중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을 때 안전성 측면에서 큰 이점을 제공한다. dCas9과 DNMT의 융합 대신에, 세포의 내재적 DNMT를 끌어오는 방식을 채택한 CHARM 기술은 작고 컴팩트한 크기로 인해 AAV 벡터에 탑재하기에 적합하며, 다중 타겟팅이 용이하고, mRNA-LNP와 같은 다른 전달 방식과의 호환성도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앞으로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견고한 증명을 바탕으로, 고지혈증과 퇴행성 신경질환 등 다양한 질환과 암과 노화에도 후성유전체편집을 이용한 혁신적 치료기술의 개발이 기대된다.
<참고문헌>
1. Nicole Rusk. CRISPRs and epigenome editing. Nature Methods. 2014.
2. Emily A Saunderson, et al. CRISPR/dCas9 DNA methylation editing is heritable during human hematopoiesis and shapes immune progeny. Proc Natl Acad Sci U S A. 2023;120(34):e2300224120
3. Martino Alfredo Cappelluti, et al. Durable and efficient gene silencing in vivo by hit-and-run epigenome editing. Nature. 2024;627(8003):416-423.
4. Edwin N Neumann, et al. Brainwide silencing of prion protein by AAV-mediated delivery of an engineered compact epigenetic editor. Science. 2024;384(6703):ado7082.
5. 김미랑. 후성유전체 편집기술의 기술개요 및 시사점 BioINpro. 2022.
* 본 기고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시행한 「유전자편집·제어·복원기반기술개발사업」수행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본 내용은 유전체편집연구지원사무국(GERC)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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