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캐스나인(CRISPR-Cas9, 이하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이 혈액질환 치료를 출발점으로 심혈관·대사질환은 물론 초희귀질환 환자 맞춤형 치료 영역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며 차세대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크리스퍼 치료제는 상업화 이후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적용이 확대됐으며, 체내(in vivo) 직접 유전자 편집을 기반으로 한 심혈관질환 치료제 후보물질과 1인 맞춤형 유전자 편집 치료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미국혈액학회(ASH) 발표와 주요 학술지, 기업 공시를 종합하면 크리스퍼 기술은 희귀 혈액질환 중심의 초기 적용 단계를 넘어 만성질환과 정밀의학을 포괄하는 범용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세계 첫 CRISPR 치료제 ‘카스게비’, 소아 임상 성과로 적용 범위 확장 신호
미국 버텍스파마슈티컬스(Vertex Pharmaceuticals, 이하 버텍스)와 스위스 크리스퍼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가 공동으로 개발한 ‘카스게비(Casgevy, 성분 엑사감글로젠 오토템셀)’는 소아·청소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하며 적용 연령과 적응증 확대 가능성을 높였다.
최근 ASH에서 공개된 카스게비 임상3상(CLIMB-151·141) 결과에 따르면, 5~11세 소아 환자에서도 12세 이상 환자군과 유사한 안전성과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크리스퍼 기반 치료제의 소아 환자 대상 적용 확대 가능성이 임상적으로 뒷받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버텍스는 2026년 상반기 중 해당 연령대에 대한 글로벌 허가 신청에 착수할 계획이다. 회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카스게비에 대한 소아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우선심사 프로그램(Commissioner’s National Priority Voucher)을 확보한 상태다.
카스게비는 환자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체외(ex vivo)에서 크리스퍼로 편집해 태아혈색소(HbF) 발현을 회복시키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크리스퍼 기반의 유전자 편집 치료제다. 현재 겸상적혈구병(SCD)과 수혈 의존성 베타지중해빈혈(TDT)을 적응증으로 글로벌 허가를 받았다.
◇혈액질환 넘어 심혈관으로…‘CTX310’, 체내 편집으로 LDL·중성지방 등 ↓
혈액질환 이후 CRISPR 기술의 다음 적용 영역으로는 심혈관 및 대사질환이 거론된다. 크리스퍼테라퓨틱스가 개발 중인 ‘CTX310(개발코드명)’은 ANGPTL3 유전자를 표적으로 간에서 직접 유전자 편집을 수행하는 체내(in vivo) 크리스퍼 기반의 후보물질이다.
지난 6월 공개된 임상1상 중간 결과에 따르면 CTX310은 LDL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각각 최대 86%, 82%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량 증가에 따라 지질 감소 효과가 확대되는 경향이 관찰됐으며, 현재까지 간 효소 상승 등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안전성 이슈는 보고되지 않았다.
CTX310은 고위험 이상지질혈증 환자를 우선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다. 회사는 이와 함께 LPA 유전자를 표적으로 한 ‘CTX320(이하 개발코드명)’과 난치성 고혈압 치료를 겨냥한 ‘CTX340’ 등 심혈관·대사질환 영역의 후속 파이프라인도 병행 개발 중이다.
◇버브, LNP 기반 크리스퍼로 심혈관 파이프라인 확대…릴리 인수로 상업성 부각
미국 버브테라퓨틱스(Verve Therapeutics, 이하 버브)는 지질나노입자(LNP)를 활용해 간을 표적으로 유전자 편집을 전달하는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회사는 PCSK9 유전자를 표적으로 한 ‘VERVE-101(개발코드명)’과 ‘VERVE-102(개발코드명)’, ANGPTL3 유전자를 겨냥한 ‘VERVE-201(개발코드명)’ 등을 중심으로 심혈관질환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 후보물질은 간에서 특정 유전자를 영구적으로 차단해 LDL 콜레스테롤을 장기적으로 조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버브는 이를 반복 투여 없이 단회 치료로 효과를 기대하는 이른바, ‘평생 한 번의 치료(one-and-done)’ 접근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 핵심 파이프라인인 VERVE-102는 임상 단계에서 개발이 진행 중이다.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Eli Lilly)는 지난 6월 조건부 지급권(CVR)을 포함해 최대 약 13억달러(약 1조9200억원)에 버브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크리스퍼 기반의 심혈관 치료제가 만성 복용 중심의 기존 치료 전략을 대체할 수 있는 잠재적 플랫폼으로 평가받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크리스퍼 신약, 심혈관·맞춤치료 영역으로 확대
크리스퍼 기술의 적용 범위는 초희귀 환자 1인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n-of-1) 치료’로도 확장되고 있다. 이는 다수 환자를 겨냥한 단일 후보물질 개발이 아니라, 개별 환자의 유전자 변이에 맞춰 치료를 설계하는 접근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어린이병원(CHOP)과 펜메디슨(Penn Medicine) 연구팀은 ‘CPS1 결핍증’을 앓는 영아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 맞춤형 베이스 에디팅 치료를 설계·투여한 결과를 보고했다. 환자에게서 확인된 특정 유전자 변이를 직접 교정하는 방식으로 치료 효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기존 신약 개발과는 다른 접근 사례로 평가된다.
이와 달리 미 보스턴에서는 맞춤형 유전자 편집 치료를 보다 체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보스턴어린이병원(Boston Children’s Hospital)과 미 국립보건원(NIH)은 2023~2024년부터 초희귀 유전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공동 프로그램을 통해 ‘맞춤형 크리스퍼 치료’를 개발·적용하고 있다. 또 베이스 에디팅(Base editing)과 프라임 에디팅(Prime editing) 등 기존 크리스퍼(Cas9) 절단 방식과 차별화된 정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한 사례를 단계적으로 축적하고 있다.
더바이오_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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